한국 노인인구 1112만,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노인복지·일자리
서울 고령층 80% AI 준비안돼...키오스크 활용도 63%가 불편
자원봉사 중심 디지털도우미, 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로 확대 필요
새로운 노인일자리 창출 앞서 선제적 디지털교육도 중요
한 거리에서 노년층, 장년층, 청년층이 함께 걷고 있는 모습. 노인 문제는 해당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풀어내야할 숙제다.[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한국이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문제는 더 이상 복지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게 됐다. 늘어나는 노인 인구, 심화되는 노인 빈곤, 사회적 고립, 그리고 디지털 전환 속에서 커지는 접근성 격차까지. 고령층을 둘러싼 문제는 소득·관계·생활 전반을 동시에 압박하는 복합 위기로 번지고 있다.
특히 키오스크 주문, 모바일 병원 예약, 비대면 행정 서비스, 앱 기반 교통 이용, 생성형 AI 기반 정보 검색 등 일상 전반이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고령층의 불편은 단순한 적응 문제가 아니라 사회 참여 자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에서 노인복지와 노인일자리를 따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인프라로 묶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생계형 일자리를 늘리는데 그치치 않고 디지털 소외를 해소하는 역할 자체를 새로운 노인일자리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AI나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일부 고령층을 디지털 지원의 수혜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와같은 케이스를 적극적으로 양성하여 같은 세대의 디지털 장벽을 낮추는 ‘시니어 디지털 도우미’로 양성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 늘어나는 노인인구, 디지털 소외 현상은 사회적 문제
통게청 자료에 따르면 2026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112만 5000여명에 달해 전체 인구의 20.0%를 훌쩍 넘겼다. 15-64세에 해당하는 연령대 인구는 3548만 8000명, 0-14세 인구는 499만 6000여명에 불과하다.
과거 한국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까지 18년이 걸렸으나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기 까는 단 7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고령인구 비중 증가 속도는 대표적 고령 국가로 꼽혔던 일본보다도 빨라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문제는 단순히 오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오래 일해야 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고령층 고용률은 OECD 최고 수준이지만 고용의 질은 여전히 취약하다. 비정규직 비중이 60%를 넘고, 10인 이하 영세사업장 종사 비율이 절반 수준에 이른다.
50대 후반 이후에는 소득이 급격히 감소하고, 정년 또는 조기 퇴직 후 재취업을 하더라도 평균 연봉은 3,500만 원대에서 2,800만 원대로 낮아지는 구조가 반복된다. 65세 이후에는 별도의 노후 준비나 연금이 없다면 월 20~30만 원 수준의 공공형 노인일자리에 의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하는 노인은 늘어나지만 노인빈곤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일자리의 부족은 곧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는 지금, 고령층에게는 단순한 소득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접근할 수 있느냐’ 자체가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키오스크 주문, 모바일 병원 예약, 비대면 행정 서비스, 앱 기반 교통 이용, 생성형 AI 기반 정보 검색까지. 디지털 기술은 빠르게 일상으로 들어왔지만 모든 시민이 같은 속도로 적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AI재단이 서울시민 5,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서울시민 디지털역량실태조사’는 그 격차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역량 실태조사 결과. 여전히 많은 고령층이 AI 활용은 커녕 키오스크 사용에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서울시민 전체의 생성형 AI 이용률은 43.2%로 2023년(15.4%) 대비 2년 만에 약 3배 증가했다. 그러나 고령층의 생성형 AI 이용률은 12.2%에 그쳤다. 55세 미만 시민의 이용 경험률이 63.9%인 것과 비교하면 격차는 매우 크다.
AI 시대에 스스로 “준비되어 있다”고 답한 시민은 전체의 46.8%였지만, 고령층은 19.6%에 불과했다. 고령층 10명 중 8명은 AI 시대에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셈이다. AI 확산에 대한 우려 역시 고령층이 더 컸다. ‘우려가 크다’는 응답은 고령층이 30.1%로, 55세 미만(9.3%)보다 3배 이상 높았다.
키오스크는 더욱 직접적이다. 고령층의 키오스크 이용률은 71.7%까지 높아졌지만, 이용자의 63.3%는 여전히 불편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주요 이유는 ‘선택사항 적용의 어려움’(50.9%), ‘뒷사람 눈치’(47.2%)였다. 고령층 이용자의 55.5%는 여전히 키오스크 조작이 미숙하다고 응답했다.
버스표를 끊지 못하고, 병원 예약을 하지 못하고,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때 얻지 못하면서 노인층을 중심으로 디지털 소외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셈이다.
■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시니어를 돕는 시니어가 필요한 시점
서울시는 지난 4월 13일부터 서울 4대 고속버스터미널(고속·센트럴·동서울·남부)에서 ‘디지털 동행파트너’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무인 발권기(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 등 디지털 약자를 돕기 위한 현장 지원 사업이다. 월 160명의 자원봉사자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터미널 내 무인 발권기 주변에 배치돼 예매부터 발권까지 전 과정을 1대1로 지원한다. 단순한 사용법 설명이 아니라 실제 이용 과정을 함께 수행하는 ‘동행형 지원’ 방식이다.
서울시는 기존 ‘디지털 안내사’가 생활 공간 중심 지원이었다면 이번 사업은 이동기본권과 직결되는 교통 거점에 인력을 집중 투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한다. 현장에서는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캠페인도 함께 운영해 고령층이 심리적 부담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사업은 시범 운영 이후 서울역과 용산역 등 주요 기차역까지 확대가 검토되고 있으며, 참여 인원도 월 360명 수준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디지털 동행파트너는 대학생 중심의 ‘서울청년 파트너스’와 시민 자원봉사자로 운영된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청년층의 참여는 초기 대응 모델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서울시에서 고령층 복지를 위해 운영중인 디지털동행파트너의 활동 모습.하지만 초고령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단기 봉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상시 지원 체계다.
고령층의 디지털 문제는 일회성이 아니다. 키오스크는 물론 병원 예약, 공공서비스 신청, 금융 이용, 교통, 생활 정보 접근까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일상 문제다.
서울AI재단 조사에서도 고령층은 디지털 문제 해결 방식으로 ‘주변 도움’(56.2%)을 가장 많이 선택했고, ‘해결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20.2%에 달했다. 원하는 지원 방식 역시 ‘지역 상담소 방문’(56.7%), ‘지원 인력의 가정 방문’(44.5%) 등 명확하게 대면 중심이었다.
단순한 자원봉사가 아닌 새로운 노인일자리의 설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원봉사는 개인의 이타심과 공공기관의 시혜적 비용 투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지속성과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반면 같은 영역을 제도화된 ‘일자리’로 전환하면 새로운 노인일자리 창출과 디지털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역할을 가진 노동은 단순한 생계 보조를 넘어 노년의 고립을 줄이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게 한다. 안정적인 소득 보전과 함께 사회 참여가 지속될 때 노인일자리는 일회성 복지사업이 아니라 삶의 질을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특히 같은 세대의 불편은 같은 세대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시니어 디지털 도우미’가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는 이유다. 키오스크 앞에서 느끼는 뒷사람의 눈치, 앱 설치 과정에서의 불안, 모바일 금융에 대한 경계심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공시설, 병원, 주민센터, 버스터미널, 복지관, 전통시장, 금융 창구 등에서 고령층의 디지털 접근을 돕는 생활 밀착형 지원 인력은 고령층의 디지털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키오스크 이용부터 병원 예약, 행정 서비스 신청, 교통 이용, 금융 업무까지 일상 전반의 디지털 장벽을 낮추면서 생활권 자체를 넓히는 효과가 기대된다.
공공서비스 현장의 부담 완화 역시 중요하다. 반복되는 민원 응대와 현장 혼선, 대기시간 증가 문제를 줄여 행정기관과 공공시설의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디지털 기기 확산으로 발생하는 현장의 마찰을 완충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결국 이는 기존 공익형 단순 업무 중심의 노인일자리보다 지속성과 전문성을 갖춘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AI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불평등을 줄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기술 도입 속도와 시민의 실제 수용 능력 사이의 간극을 방치할 경우 디지털 전환은 새로운 배제가 되지만, 이를 연결해주는 사람이 존재할 때 기술은 비로소 모두를 위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다만 디지털 기기나 AI 기술에 이미 능통하여 활용이 용이한 노년층은 많지 않다. 때문에 이와 연계하여 현장 투입을 위한 디지털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사용은 물론 AI 기초 이해, 개인정보 보호, 디지털 사기 예방, 응대 방식, 현장 매뉴얼까지 포함한 체계적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지난해 노인일자리 현장을 분석한 사례에서도 시니어 인력 확대의 가장 큰 한계는 교육·숙련 인프라 부족과 표준화된 운영체계 부재로 지적됐다. 개인이 사비를 들여 교육을 받아야 하거나, 현장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에 머무는 구조로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되기 어렵다.
반면 교육의 효과는 확실하다. 이미 주요 편의점에서는 포스기 활용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됐던 노인인력이 판매원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간단한 교육이 선행된다면 노인인력의 활용도는 충분히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초고령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시작점은 노인을 보호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 데 있다.
고령층이 단순한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인력 인프라로 봐야한다는 지적은 이미 현장에서 먼저 흘러나오고 있다. 복지와 일자리를 따로 설계해서는 빈곤도, 고립도, 디지털 격차도 동시에 풀 수 없다. 키오스크 앞에서 멈춘 노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연결하는 새로운 일자리 구조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