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요리 교실] 음식을 집에서 만드는 사연 / 세프 이성우 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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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니온 댓글 0건 조회 110회 작성일 26-07-16 19:42본문
이성우 셰프님의 글입니다. 이 셰프님은 시집을 펴낸 시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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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집에서 만드는 사연]
큰딸 가문비가 초등학교 5학년때, “아빠, 집에서 만든 두부 먹고 싶어” 하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명색이 신약 개발하러 입사한 연구원일진대 실험실은 제쳐놓고 노조 활동이며 사회단체 활동 한답시고 늦은 귀가가 일상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때마침 강릉 처가에 갔다가 동해 바닷물 간수를 접하게 되어 두부 만들기는 틈틈이 제 주요 일과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두부로 시작해서 직접 만드는 음식이 감자스프, 감자피자, 돈까스, 몽고리안 스테이크 등으로 점점 늘어났습니다. 아이들도 스스로 참여하고 품평했습니다. 두 딸 나이 차이가 여섯 살, 큰딸이 초등학교 입학해서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8년 걸렸습니다.
그 세월 동안 소풍가는 날과 주말이면 세 여자(아내, 딸 1, 딸 2)가 요구하는 삼인삼색 김밥을 싸놓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식구끼리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것이 소통을 위한 훌륭한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온 아이들에게, 딸 생일날 집에 초대받은 친구들에게,
가문비와 느티 아빠가 만든 음식이 오래도록 회자된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큰딸이 중학교 3학년때부터 고3때까지, 4년 가까이 아내가 서울로 발령받아 주말 부부로 생활했습니다. 주중에 시간이 허락하는 날이면 두 딸의 동의를 구한 다음,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음식점 대신에 집으로 불렀습니다. 직접 만든 음식과 술을 내놓고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성껏 차려낸 음식은 사람들에게 힐링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 일이 힘들거나 고민에 빠진 사람들에게 음식이 좋은 처방이 된다는 것, 그런 얘기들을 사람들에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슬로푸드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4월 하순이면 제철 죽순을 구해서 손질하고 삶아 먹고 냉동하고-
5월이면 두릅, 엄나무, 가죽나물 같은 새순을 사다가 바로 먹고 장아찌도 담그고-
6월이면 토종 매실을 직접 따다가 반찬용으로 절이고 매실청도 담고-
8월이면 괴산에 가서 대학찰옥수수 20~30포대 사와서 이웃에게 나눠주고 몇 포대는 삶아 냉동실에 두고 1년동안 간식과 음식 보조 재료로 쓰고(2회차 대하 옥수수 구이처럼)-
9월 말이면 양양이나 보은 능이버섯을 구하여 직접 말려
일년간 소중한 사람들에게 음식차릴 때 쓰고-
그렇게 음식 만드는 것을 이 닦고 세수하는 일처럼 여기면서도 한껏 즐기며 살아왔습니다. 심지어 재정이 어려운 서울 어느 사회단체 후원주점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후원주점 메뉴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문어숙회(20키로), 바지락탕과 바지락 파스타(40키로), 대하구이(10키로), 가지구이(2상자, 80여개) 등을 2년 연속 즉석에서 해내기도 했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자원해서 함께 했었지요.
몇년 전 겨울에 있었던 일입니다. 김천과 대구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 열댓 명을 황간 어느 전원 주택에 불렀습니다. 저희 초딩 졸업 동기가 36명인데 절반 가까이 모였습니다. 늘 하던 대로 여러가지 음식과 술을 차려냈지요. 실컷 먹고 떠들다가 한 여자 동기가 눈물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성우야, 내가 할머니가 되도록 음식을 차리기만 했지.
집에서 남이 차려준 음식을 먹은 게 오늘 처음이다.“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도 가지 못한 여자 동기들 몇몇이 맞장구쳤고, 저로서는 그 얘기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누구든지 때와 장소가 맞으면 음식 차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저에게 소중한 사람들, 추억 속에 늘 함께 하는 사람들, 특별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내 나이 다섯 살때 돌봐주셨던 막내 고모(아흔이 넘은)부터 사돈의 팔촌 가운데 추억을 선사한 형제자매들 두루두루, 대구에서의 자취 생활을 기억하는 고딩 친구들, 최루탄에 분연히 맞섰던 대학 친구들과 후배들, 세월 따라 외국 영주권을 가지게 된 친구들까지 저는 너무도 행복한 마음으로 만났고 음식과 술을 냈더랬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작년 어느 모임에서 20여명분 음식과 안주를 차려내고 밤새 술과 얘기로 지새고 나서 남긴 후기 가운데 앞부분입니다. 뒷부분은 그 모임 사람들과의 인연에 관한 것이라 생략했습니다.)
어제 뒤풀이에서
제 곁에 앉아있던 동지들께는 말씀드리기도 했지만, 저는 음식 만들 공간이 있고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전국 어디든지 갑니다.
때로는 노조 수련회 가면서 아침 해장국을 대신할 순두부를 현장에서 직접 만들려고 콩과 간수, 베보자기와 도깨비 방망이(블랜더)를 챙겨가기도 했습니다.
하물며 대전-서울, 세종-서울 거리쯤이야 무어 그리 힘든 일이겠습니까.
이번 요리교실을 통해 맺은 인연들이 오래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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